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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당포해전과 당항포해전 사량도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조선 수군에게 당포 부근에 상당수의 적선이 정박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속도로는 사량도에서 당포까지 노를 저어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지금의 쾌속선 속도로는 20분이면 당도하는 거리였다. 전군 출정 명력이 내려졌고, 보고받기를 당포에 21척의 적선이 정박해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당포로 한방에 직접 치고 들어가지 않았다.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위험 요소를 면밀히 파악하고 철저히 대비하였다. 당포에서는 사천에서와는 다르게 수심이 깊고 암초가 거의 없기에 육중한 판옥선이 움직이기 최상의 조건이었다. 상당수의 일본 병력은 육지로 출격하여 노략질을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 수군이 접근하는데도 미동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거북선이 다.. 더보기
사천해전 옥포해전의 소식이 일본으로도 전해졌고, 그 소식을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불같이 화를 냈다. 당시의 일본은 바다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아시아에서 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또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하찮게 여겼던 조선 수군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 해군의 실체와 행각, 상황들을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져 일본은 조선의 해군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라좌수영 함대가 그만큼 첩보전을 잘 수행했다는 의미였다. 다음은 분노에 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린 명령이다. 1. 지체하지 말고 조선 왕을 사로잡을 것.2. 속히 전라도를 속지로 삼아 원정군의 식량을 현지에서 조달할 것.3. 남해안 일대를 거점화하.. 더보기
합포해전과 적진포해전 옥포해전에서 거둔 승리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첫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승리에 들뜬 병사들의 마음을 가라앉힌 후 휴식을 위해 함대를 거제도 영등포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바다에서 신기전이 쏘아 올려졌다. 척후병으로부터 올라온 일본 전함이 있다는 신호였다. 옥포에서 싸운 후 약간은 지쳐있었던 조선군이지만, 눈앞의 적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확인된 것은 합포 근방에서 일본 함선 5척이 우왕좌왕하는 중이었다. 조선 함대에 막혀 도망갈 수 없었던 일본군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치려던 찰나였다. 옥포에서와 같은 진을 치게 한 뒤 판옥선에서 포를 내뿜었다. 일본군이 버리고 간 전함 5척을 모두 불태웠고, 전라좌수영은 출정 후 두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이순신은 합포에서 나와 남포로 향했다.. 더보기
조선의 화포 / 임진왜란의 발발 천자총통은 사정거리 1200보의 가장 큰 화포이다.당시 조선의 화포 수준은 거의 세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말 진포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최무선은 화약 및 포를 만들기 위한화통도감을 따로 만들 정도였다. 임진왜란을 준비하며 선조 때 만들어진 현자총통은 화약의 낭비가 적어 보다 널리 사용되었다. 조총의 사정거리가 50m에 비해 20배의 사정거리를 가지는 조선의 화포였다. 이러한 화포들은 판옥선에 실리며 함포로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히데요시는 전선을 일본 밖으로 확대하고 싶었다. 내전이 끝난 이후 실업자로 전락할 젊은 무사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인전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을 따르는 가신들에게 전투 경험과 동시에 힘을 키워주고 싶었다.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불만 세력을 .. 더보기
이순신의 출생부터 관직생활 [이순신의 출생에서 무과에 합격까지]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은 초계 변씨와 결혼했는데, 변 씨는 지방 현감의 딸이었다. 이순신의 외할아버지가 지방의 사또였음을 짐작해 봤을 때, 이순신은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양반 집안 만큼의 집안임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1545년 3월 8일, 지금의 서울 중구 인현동 부근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건천동은 군사훈련장인 훈련원 부근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전쟁놀이를 즐겨했고, 항상 대장 역할을 맡았다. 동네 출신인 사람 중에 류성룡과 원균이 있었는데, 류성룡은 이순신보다 3살 위였고, 원균은 5살 위였다. 류성룡은 진작에 이순신의 사람됨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후에 원균과 이순신의 아이러니한 인연이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랐다는 것으로 조금은 신기하게 생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