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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떠나 전남 고흥에 자리를 잡다. 안녕하세요. 현재 전남 고흥에 살면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카페 풀비 입니다.어느덧 고흥에 내려온 지 3개월이 넘어가는데요. 도시에서 살며 수많은 경쟁에 지친 몸과 마음을치유하기 위해 고흥에 자리를 잡았는데요.저도 고흥은 처음 와보는 곳입니다. 스타벅스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먼저 내려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2호점을 연다고 해서 스카웃(?) 제의를 통해 저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스타벅스 부점장이 되기 위한 시험을열심히 준비하던 때라 작년에 제안했으면 안 갔을 텐데... 올해 초반에 진급 좌절도 많이 했고,상당히 심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큰 도전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를 봐도 내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도전할 수 있는 .. 더보기
작심 3일이지만 괜찮아.. 안녕하세요. 운동하기로 마음먹고, 또 흐지부지되었는데, 다시 심기 일전 해보려고 합니다.현재 생활 습관에서 가장 안 좋은 점이 저녁 폭식 이었는데요.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20시 반이 다 되어서, 시간도 늦게 되고, 그때 먹으면 또 폭식을 하게 되어그 습관을 고치려고 합니다. 식단을 하기에는 너무 손이 많이 가고, 손이 최대한 안 가는 선에서적게 먹고, 운동량을 많이 가져가려는 목표를 잡고 있습니다. 끼니는 매장에서 때우고, 18시 이후로는 먹지 않는 걸로...무엇보다 저녁 음주가 상당히 안좋은 습관인데, 음식 안 먹고, 술을 안 먹는 거로 1차 목표.그리고 헬스장가서 웨이트하고, 운동장에 가서 조깅을 통해 유산소를 하며 기초대사량을 늘려 보고자 합니다.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만 그전에 건강.. 더보기
고흥에 조깅하기 좋은 곳 추천 안녕하세요. 제가 서울에 살다가 고흥으로 정착하게 되었는데, 팍팍한 도심에서 살아가한적한 시골에 내려오니 심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겼네요. 건강도 되찾을 겸 운동을 이제 시작하는데, 내려오자마자 집 근처 헬스장은 끊어놨고,헬스보다 조깅을 좀 더 하고 싶어서 찾은 장소 입니다.박지성 공설운동장은 고흥의 명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돈된 경기장, 트랙과 현충탑, 공원으로조성되어 있습니다. 트랙이 있어서 뛰기 참 좋네요.경기장 바로 앞엔 한우 정육식당, 고흥 작은 영화관도 있고, 옆에 보에는 수영장도 있습니다.상당히 규모가 있고, 서울에서도 잘 보기 힘든 규모가 고흥에 있다니... 현충탑에 올라가서 본 광경은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조금의 오르막을 통해 올라가면 탑이 있습니다.충무공 이순신의 주.. 더보기
건강을 다시 되찾아봅시다. (지난 날들을 되뇌이며..) 12년도에 육군 장교로 전역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몸이 이렇게 망가질 줄은 몰랐다.내 몸의 전성기는 아마도 임관 직전일 것이다. 그때보다 체중은 20kg이 증가했고,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말로만 다이어트하자고 하고 실제 행동으로는 못 옮겼던, 지난 과거를반성하며,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 내 건강을 위해서, 혹시 모를 연애(?)를 위해서...건강 관련한 정보들과 운동 정보들을 포스팅하며, 일기 형식으로 써보려고 합니다.20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대사량이 좋았는지, 몸무게 좀 늘어도 금방 빠지곤 했는데,,, 이젠 아니지만 ㅠㅠ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건강한 삶을 위해 이번에야말로 열심히 운동하고, 도전해 봅시다!! 션님의 815 마라톤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 더보기
명량대첩 이순신이 해남 어란진에서 진도 벽파진으로 이동하자 일본의 수군은 비어있는 어란진까지 진격하였고, 어란진은 일본 수군의 새로운 전진 기지가 되었다. 이순신은 울돌목의 지형과 물살을 조사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고자 벽파진에 진을 쳤다. 울돌목은 서해 바다와 남해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물살이 너무 세서 울면서 돌아가는 길목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살이 센 곳으로, 이곳으로 일본군을 유인하기 위해 벽파진에 진을 치면서 기다렸다. 이순신은 자신을 미끼로 내던진 것이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적의 수군이 서해 바다를 돌아 여러 강을 타고 내륙으로 보급을 할 수 없도록 신명을 다할 뿐이었다. 조선 수군 전체적으로 사기가 떨어진 상태고, 이순신 또한 전투를 앞두고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보기
어란진 해전과 벽파진해전 칠천량해전 이후 일본군에 그동안 꿈도 꿀 수 없었던 전라도 바닷길이 훤히 열렸다. 일본군은 한산도해전에서 패한 이후 몇 년간 견내량을 통과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견내량 아래의 한산도는 이순신의 본진이 있는 곳이었기에 생각만으로 두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칠천량해전 이후 견내량을 막아서는 조선군은 없었다. 그럼에도 바로 견내량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칠천량해전은 일본군 입장에서 계획에 없던 승리였기에 견내량 너머 조선의 바다 진격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서야 일본의 대규모 함대가 견내량을 조심스레 넘어왔고, 한산도를 점령했다. 일본군은 몇 년간의 분풀이로 한산도를 갈기갈기 찢어놨다. 그 이후에는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여수가 유린되었다. 계속해서 조심스레 서진을 하며 고흥 반도까지 .. 더보기
수군 재건 이순신은 칠천량해전의 패전 소식을 듣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몇 년에 걸쳐 만들어냈던 조선의 무적함대, 모든 전투 장비, 손발을 맞추던 정예병 수천 명이 칠천량 바다에 억울하게 수장되었다. 이순신은 직접 단성, 진주, 소량까지 돌아봤고, 세부 상황과 남은 병력들을 모았다. 진주에 머물던 중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되었다. 전과 같은 계급도 아닌 한 단계 낮은 계급으로 임명되었고, 현재로 따지면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지만 계급은 3성 장군 중장으로 임명한 것과 같았다. 이렇게 되면 품계가 다른 수사들과 같아지기에 의아한 조치였다고 누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아무런 불만을 표하지 않고 제수받았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고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왕, 자.. 더보기
칠천량해전 선조와 원균은 왜 이토록 이순신을 싫어했던 것일까?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고, 그 결과로 한반도를 지켜냈고, 이순신이 없었다면 나라를 완전히 빼앗겨 일본의 속국이 되었을 텐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순신의 파직 소식도 명나라와 일본에 속속들이 전달되었다. 선조는 원균에게 출정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그 많은 전투를 이순신과 함께 치르면서 어느 것조차 학습 못한 무능한 지휘관이었다. 많은 전투에도 이순신은 단 한 척의 판옥선을 잃지 않았는데, 거제도에 급습한 원균은 판옥선 1척을 소실시켰고, 아군 140여 명이 전사했다. 부산 공격을 명령한 선조는 권율 휘하의 육군 5000명을 원균의 수군에 합류시켰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었던 몇 년 동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