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일본군이 안골포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가서 왜군을 섬멸하고 싶었지만, 격군들의 수고스러움을 알기에 칠천도에서 하루의 휴식을 더 주었다. 다음날 새벽 2시 칠천도에서 출격하였고, 이른 아침 안골포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일본군이 숨어 있는 안골포는 굉장히 좁고 얕은 포구였다. 썰물 때는 바닷물이 다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는 곳이다. 공격을 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정해져 있었다. 육지에는 왜군의 화포를 장착해 자신들의 함대를 엄호하고 있었다. 섣불리 공격하기에 위험 부담이 있었고, 밀물 시간을 놓치기 또한 아쉬웠다. 좁은 안골포에서 효과적으로 포를 쏠 계획을 했던 이순신은 2척씩 들어가 포를 쏘고, 교대하여 포를 식히고 재장전을 하는 등 준비 시간을 가졌다. 지상의 왜군의 포보다 조선 해군의 포의 사정거리가 더 길다는 점을 적극 이용했다. 먼 거리에서 포를 쐈기에 직접 타격보다는 2시간 내내 포를 돌아가면서 쏘며 타격을 주었다. 일본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썰물 시간이 되어 이순신 함대는 물러났고, 다음 밀물 시기에 어김없이 찾아와 포를 쐈다. 왜선 40여 척 중에 20여 척이 박살 나거나 침몰했다. 밤이 되자 이순신의 함대가 안골포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했다. 그 틈을 타 일본군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을 위한 움직임이 아닌 도망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놓쳤지만, 3차 출정을 통한 승리로 인해 일본군들은 공포를 떨었고, 조선의 함대를 막아서는 일본 전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하고 있었던 부산을 제외하고는 조선의 남해안은 이순신의 바다가 되었다. 내친김에 부산까지 공격하고 싶었지만, 오랜 원정길에 장병들은 지쳐있었고, 군량미와 포탄, 화약도 보충해야 했다. 3차 출정을 마치고 여수로 귀항했을 때, 여수 주민들과 장병 가족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애끓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순신과 전라좌수영의 수군을 향한 고마움과 신뢰감이 가득했다.
여러 차례의 승리와 분위기 반전은 우리 수군들에게 이순신 장군에게도 큰 자신감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일본군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공포이자 고통이었을까.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바다에 수장되는 주변 동료들을 볼 때에 가장 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화포를 잘 다룰 수 있게 훈련이 잘 되어있고, 신식 무기를 쓰기 위해 도입하고 전쟁을 준비했던 이순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